40 Streets in Kyoto-The Korean Residents in Kyoto
: 1st – 15th Nov. 2016

Dongphil Shin

The Korean Residents In Kyoto

Kyoto is a city of Japan, one of the most economically powerful nations around the world. Less than 1 km south-east from Kyoto station, there is a Korean town along Kamo coast. There live people so called “40 street”. In 1945, in which Korea was emancipated, many Koreans gathered in Kyoto; they were either forced by Japan, or wanted to earn money or return to Korea. People started a community near the station, waiting for trains they weren’t sure when would arrive. Many people did return to Korea, but those who couldn’t remained in the slum. In 1950, the slum was cleared under Kyoto’s town planning policy for building an internationally cultural city. Therefore the Koreans who used to live there were moved to live where they have been living now for 50 years. Post wasn’t allowed to be delivered since it is considered an illegal occupation, and tap water was installed only after 1982.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 교토 역에서 남
동쪽으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가모 강변을 따라 한인촌이 형성되어 있다.
통칭 ’40번지’ 사람들이다.
조선이 해방된 1945년. 일본에 강제로 끌려왔거나 돈을 벌기위해 온 많은
조선인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 교토 역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를 기차를 무작정 기다리며 역 근처에 간이 주거 시
설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지만 결국 남게 된 사람들은 이곳 판
자촌에서 살게 된다. 1950년 교토국제문화관광도시법에 의해 판자촌을 철
거하였다. 조선인들은 현재의 자리로 밀려와 50년 동안 집단촌을 형성하고
살게 된 것이다. 불법 점유라는 이유 때문에 이곳에는 우편물도 배달되지
않았고, 수돗물이 처음 공급된 것이 1982년부터다.
버려진 쓰레기와 망가진 전자제품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고, 누군가 재활
용하기 위해 쌓아놓은 고철 덩어리에서는 시뻘건 녹물이 묻어난다.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형태만 식별할 정도의 암흑세상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이곳
을 ‘0번지’라고 한다. 행정과 치안의 사각지대임을 자조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일본 행정당국은 불법 무허가촌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외면했다. 외국인에
게 차별적인 법률과 보이지 않은 장벽으로 이들을 푸대접해왔다. 교토 40
번지 사람들은 어느 이국땅의 한국인보다, 어느 재일 동포들 보다 힘겨운삶을
살아왔다. 이곳에 그나마 재개발의 바람이 분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20년 가 까이 주민자치회가 투쟁해 얻어낸 것이 임대 아파트. 소득 수준에 따른
임대료를 내야하고, 40번지에서 일정기간 산 사람이 아니면 자격이 없어 많
은 사람이 40번지를 떠났다.
스물두 살에 징용돼 탄광에서 14개월 동안 강제노역을 한 김용수옹(80)은
“난 저들이 지어주는 임대아파트에는 들어가지 않아. 낡았어도 내 집에서
살고 싶어. 내가 왜 이곳에 왔는데? 탄광에서 일한 보상은커녕 임금도 없
어. 그런데 65년 한국정부하고 협상한 이상 더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도대체
내 인생은 누가 보상하노?”라고 이야기한다. 30년 동안 자치회 부회장을
맡아온 이낙선씨(75)는 “죽을 때 까지 그냥 사는 거야. 희망이라는 것은 찾
지 않아. 고향에 반겨줄 사람도 없고. 자식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으니 여기
서 살다 죽는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한일양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교토 40번지 사람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뿔뿔
이 흩어졌거나 임대주책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현재는 40번지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DONGPHIL SHIN Born in Wonju, Gangwondo, Korea 1965, Dongphil Shin studied Philosophy at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and photography at Design Art School in Japan, and earned  master degree inphotojournalism from Sangmyung University.

Since 1989 he has worked as a freelance photographer and a journalist. Dongphil Shin contributedto The Hankyoreh 21, Aisiana Morning Calmmagazine and other mess media while supporting himself as adjunct professorof photograpgy at Cheongju University, Tongmyong University, Yongin University, Yanbian University(in China), Sangji University,and SejongUniversity.

Dongphil Shin won photogray criticism awardsfromTimespace and Sports Chosunin 2001.He worked as an organazing committeeof “Records and Memories of Korea and Koreans in Japan through the 10 phtographers’ Eyes” in 2003 and as a curator of  “Minority Portrait” in 2004.

From 2004 through a year, he was a residency artist at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and Dong-Gang Photo Musem has his 10 works.

Books

2009, A School in Japan Run by the Pro-North Korean Residents’ League in Japan, Books Publishing Photo Text, Seoul, Korea.

2006, Documentary 1985-2005,Books Publishing Cana Books, Seoul, Korea.

2005, Love in Action, Publishing Photo Text, Seoul, Korea.

2001, Till We Meet Again, Books Publishing, Chang, Seoul, Korea.

Solo Exhibitions

2015, SETI RIVER, Seoul, Korea.

2014, The Scenery of the Record and Memories, Seoul, Korea.

2011, Sepcial Exhibition of  Coal Museum in Taeback, Taeback, Gangwondo.

2010, A Coal town, Wonju, Gangwondo.

2009, A School in Japan Run by the Pro-North Korean Residents’ League in Japan.

2005, Libert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2001, Another Family, Seoul, Korea.

2001, The Coal Miner, Seoul, Korea.

1999, 40 Streets in Kyoto-The Korean Residents in Kyoto, Seoul,Korea.

Group Exhibition

2014,  Daegu Photo Biennale2014, Korea.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한겨레21’ 아시아나 항공 기내지 등 각종 매체에 사진과 글, 영상을 기고
하였다. 청주대, 동명정보대, 용인대, 연변대(중국), 세종대, 상지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2001년 사진비평상(타임스페이스. 스포츠 조선 공동주최) 작품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 한.일 사진가
“10인의 눈”展(한겨레신문사, 한전갤러리 공동주최) 실행위원장, 2004년“마이너리티의 초상”(아름) 일본전시
사진부문 큐레이터로 국제전을 기획하였다.
2004-2005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3기 장기 입주작가로(문화관광부,국립현대미술관), 동강사진박물
관에 10점의 영구소장 되어 있다.
학력
1990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졸업.
1998 일본디자이너예술학교 사진학과 청강생(1년, 학위없음)
2000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포토저널리즘전공)

교육경력

2001-2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2002 동명정보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강사
2002-3 용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2003 연변대학교(중국) 사진학과 강사
2006 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사
2011 상지영서대학 평생교육원 강사
2011-2013 상지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강사

사진집
2001 ‘우리 다시 꼬옥 만나요’: 비전향장기수 63인의 남녘생활 (도서출판 창)
2002 종군위안부할머니 사진집 (여성부 : 공저)
2005 사랑을 행동으로: 홀트창립 50주년기념사진집(도서출판 사진과글)
2006 다큐멘터리 1985-2005(도서출판 가나북스)
2009 재일 민족학교(도서출판 사진과글)
2015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눈빛 : 공저)

수상 및 소장
2001 사진비평상 작품부문 (타임스페이스)
2003 한일 사진가 “10인의 눈”展 실행위원장 (한겨레신문사, 한전갤러리 공동주최)
2004 “마이너리티의 초상” 일본전시 사진부문큐레이터 (아름)
2004 제2회강원다큐멘타리사진사업공모 사진가 (강원도)
2004-2005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3기 입주작가 (문화관광부,국립현대미술관)
2004 동강사진박물관(10점 영구소장 2004),

개인전
1999 교토 40번지 (문화일보 갤러리, 원주문화원 전시실)
2001 광부 이춘하 (02갤러리)
2002 또 다른 가족 (코닥포토살롱) – 장애우 및 입양아에 관한 기록
2005 자유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전시실)
2005 사랑을 행동으로 (한전플라자 갤러리) – 장애우 및 입양아에 관한 기록
2009 재일 민족학교(원주 인동갤러리)
2011 태백석탄박물관 특별전(탄광촌 사진:기록과 기억展)
2014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풍경사진(갤러리 브레송)
2015 Seti River- 그들의 무게(1관). 모든 게 무너진 곳(2관) (갤러리 류가헌)

단체전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국내외 전시 40여회

Lo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