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Gun Ri Massacre/Spring, Again(Jeju uprising) by Kim Eun Ju 

1 – 10 November 2019

Introduction: Nogunri
‘The Nogunri massacre’ involved killing of up to 300 innocent people with bombing and machine guns under the railroad bridge of Nogunri in South Korea by the U.S. military forces in the name of ‘blocking the invasion of North Korean People’s Army (NKPA)’ between July 25 and 29 in 1950 after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e ‘twin underpass’ where the massacre happened is in a small village surrounded by many mountains with large rocks. On one side of the twin underpass, pedestrians and vehicles occasionally pass by, and on the other, a mountain stream flows. White circles, triangles, and squares along the walls of the bridge are all traces of bullets and bombings. You can also notice some bullets still lodged on this bridge. Numerous remnants seem to show the cruel devastation of the time.

The people who fled to the twin underpass in the summer heat were unable to drink anything except bloody water in the bombing that lasted 72 hours, and they had to experience birth and death one after another. Some mothers hid their children in their skirts to save their young sons and daughters. When the shooting did not stop because of the crying babies, some parents had to block their babies’ mouth, leading them to die in order to stop others from being sacrificed. Men who took off their clothes to camouflage their bodies with mud to escape in the overnight had survived, but most women and children who could not saw their ends under the twin overpass. Approximately 37 people had survived.

Despite surviving this horror, the mental trauma and external injuries have constantly tormented the survivors for 67 years, forcing them to endure every day in pain to this day now. At the end of July, in the middle of the midsummer night, the townspeople in the village perform ‘group ancestral rites.’ Unfortunately, some cannot even do that because the whole family was massacred during that time.

For the victims and the families, the crime scene where it all happened are inevitably the place they would want to avoid. The victims who return to the place say: “The thought of it makes my head hurt”, “Let’s not go there”, “It’s hard to bear the thought coming into my head”, “My whole body hurts more at this time of day.” Photographing at a place where historical events took place forces them to confront the past by recalling painful memories. Long time has passed since then, but they stood there hoping that everyone else would not forget that they had not forgotten anything. 

July 30th, 2017 


Again, SPRING 

In April when camellia, rapeseed and cherry blossoms bust out, Jeju becomes an island full of spring flowers. The view of Jeju 70 years ago would not have been much different from now. Spring came back in that year of Jeju 4 · 3, but the warmth of the season only melted the frozen ground, and didn’t reach the people stepping on it. 

There were many villages swallowed by the flames of ideology. The weak civilians were wounded and collapsed. The devastation that has occurred throughout Jeju remains as scars of many people even after 70 years, reminding us of the pain. There are only few survivors who have survived to date and testify about the incident now. Psychological and physical trauma has always followed the survivors like shadow, and they still have to endure each day. In the hearts of the bereaved family, sadness of losing family, husband, and child is filled like camellia red flowers In April. 

It was a place where the surviving victims or bereaved families wanted to avoid. It was not easy to find traces of the past, covered by the years. It is also rare to trace back memory and find a place that preserved its former appearance. Photo shooting at the historic incident is an act of confronting the time, and recall the agonizing memory they experienced in the past. Nostalgia arose from the wrinkled eyes of a wife who had lost her husband and from the back of a son who misses his father. The tears of a brother, who had lost his newborn orphan baby in his arms, flowed constantly. 

During the period of filming, I hoped that it would be a time for people to heal their wounds in the process of confronting their memories. Because they did not forget anything, I stood together with them in hope that many people who live today will also remember the red scar that blooms in the heart of Jeju year after year. Through photographs, I hope to vividly document the reality of confrontation with history and suffering pain of individuals.

In the midst of winter, waiting for spring…

 December 2018 



No Gun Ri Massacre (노근리)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국내
에서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군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
리 철교 밑에서 양민 300여 명을 폭격과 기관총으로 사살한 사건이다. 사건 현장
인 ‘쌍굴다리’는 큰 산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커다란 바위가 있는 산골 마을에 있
다. 쌍굴 중 한쪽은 보행자와 차량이 아주 가끔 지나다니며, 다른 한쪽으로는 조
용히 냇물이 흐른다. 다리의 벽면을 따라 곳곳에 표시된 흰 동그라미와 세모, 네
모들은 모두 총탄과 폭격의 흔적들이다. 군데군데 총알이 아직 박혀 있는 곳도
보인다. 무수히 남은 자국들은 당시의 잔혹했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쌍굴로 피신한 사람들은 72시간 동안 지속된 폭격과 날
아오는 총탄에 핏물을 제외한 그 무엇도 마실 수 없었고, 새 생명의 탄생과 죽음
을 잇달아 경험해야만 했다. 어떤 어머니는 어린 아들, 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식들을 치마 속으로 감추고 그 자리를 지켰다. 울음소리 때문에 총격이 멈추지
않자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 제 손으로 우는 아이의 입을 막아 죽
게 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옷을 벗고 맨몸에 흙칠을 해 야밤에 탈출을
시도해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여자와 아이들은 쌍굴
에서 대부분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37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참상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정신적인 트라우마와 외상의 고통은 67년 동안
끊임없이 생존자들을 따라다녔고, 그분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계신다. 7월 말 한여름 밤 이 곳 마을 사람들은 ‘떼제사’를 지낸다.
온가족이 몰살당해 그 제사마저도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분들이나 유가족들에게 있어 사건 현장은 모두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다시금 그 장소로 되돌아간 피해자분들은 말씀하신다. 자꾸 생각나서 머리가 아
파, 거긴 가지 말자,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해서 힘들어, 이맘때면 몸이 더 아
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의 촬영은 지난날 겪었던 시간들과 마주
하며 괴로운 기억을 호출하는 일이다. 긴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분들은 어느 무엇
도 잊지 않았음을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 함께 섰다.

Introduction: Spring, Again(Jeju uprising)

동백꽃, 유채꽃, 벚꽃 등이 만개하는 4월, 제주는 봄꽃내음 가득한 꽃섬이 된
다. 70년 전 과거의 제주 풍경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 4·3, 그
해에도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으나 계절이 주는 온기는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녹
일 뿐, 그 땅을 밟고 선 사람에게는 닿지 못했다.

이념의 불길이 집어삼킨 마을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 힘없는 민간인들이 아
프게 스러져 갔다. 제주 전역에 걸쳐 일어난 참상은 7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
금도 많은 이들의 상흔으로 남아 끊임없이 고통을 상기시킨다. 현재까지 살아남
아 사건을 기억하고 이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들은 그 수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
다. 정신적 트라우마와 외상의 고통은 그림자처럼 늘 생존자들을 따라다녔고, 그
분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가족과 남편,
자식을 잃은 유족들의 가슴에는 4월이면 어김없이 동백꽃 붉은 꽃처럼 짙은 그
리움이 가득 핀다.

생존피해자분들이나 유가족들에게 있어 사건 현장은 모두 피하고 싶은 곳이었
다. 세월이 덮여 옛 흔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장소들
중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곳 또한 드물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되
돌아가 이루어지는 촬영은 지난날 겪었던 시간들과 마주하며 괴로운 기억을 호
출하는 일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주름진 눈가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
들의 뒷모습에 절절하게 묻어나는 그리움을 보았다. 엄마 잃은 갓 태어난 아기를
그저 안고만 있다 떠나보낸 형의 눈물은 채 마르지 못하고 흘렀다.

촬영기간 내내, 과거의 기억과 대면하는 과정이 많은 분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분들은 어느 무엇 하나 잊
지 않았으므로, 해마다 피어나는 붉은 상처를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잊지
않기 바라며 그 자리에 함께 섰다. 개인의 고통과 아픔이 역사와 대치하는 현실
이 사진을 통해 보다 생생히 기록되어지기를 바란다.

겨울 한 가운데서 다시, 봄을 기다리며…

About the Artist: Kim Eun Ju

2010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학과 졸업
2011 한국방송통신대학 문화교양학과 졸업


2011 오월어머니, 원갤러리, 광주
2011 오월어머니, 빛고을시민문화관, 광주문화재단 초대전, 광주
2014 오월어머니, A-one 포토 갤러리, 안양
2015 <Mothers>, 빛고을시민문화관, 광주문화재단, 광주
2018 배낭이 주인을 닮았어, H:SPACE Gallery, 서울
2018 <다시, 봄> 제주 4·3 70주년 생존 희생자 및 유족 사진전, 제주4·3평화재단, 제주
2019 <그날> 광주, 광주여성재단
2019 <오월어머니> 갤러리브레송, 서울
2011 “an interval”, 영아티스트 특별전 포투모로우전, 서울 COEX
2013 그날의 훌라송, 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부산
2013 錦衣還鄕 2, “오월어머니”,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학과 동문전, Gallery 27
2014 2014서울포토페어, “Bloom” 서울 COEX
2014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
오월가족해원 퍼포먼스 전시기획
2015 Pre-여성사진페스티벌 ‘멜랑콜리,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7.17~7.31)
SPACE22, 서울
2017 錦衣還鄕 6, 계원예술대학교 KUMA 기획전
2018 제주 4·3 70주년 동아시아 평화인권 사진展
“침묵에서 외침으로” 노근리 사진전시 (2018. 3. 26~6. 25) 제주, 제주4·3평화재단
2018 제5회 수원국제사진축제 초청작가 <Mothers> (2018. 10. 24~10. 31)

2013 2013 설화문화전 <활, 시대를 관통하다>, (주)아모레 퍼시픽 참여작가, 인갤러리
2013 수원 생태교통 2013 백서 참여작가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 (사)오월어머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