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늘 : 1st – 30th Nov. 2016

 

Park  Byung  Moon

아버지의 그늘(전시명)

강원도 철암 삼방동 마을.
석탄합리화 정책 이후 하나 둘 폐광이 늘어가면서 고향이라 여기며 살았
던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옥수수 낱알 빠지듯 빈집이 늘어나고
철거가 되면서 그 자리는 남은 사람들의 야채 밭으로 변해 갔다. 그 골목
엔 벽화가 그려지고, 탄광촌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실마리
만 안겨줄 뿐이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서로 부딪히며 걸어 다녔던 철암시장은 철거라는 명
분아래 떠난 자리와 남은 자리가 분명해 졌고 그나마 남은 상가에는 인기
척이 그립다. 영원히 존재 할 것 만 같았던 철암시장은 뭉텅뭉텅 부셔지
고 무너지면서, 삐죽한 철골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날리는 분진에 가던
길을 멈춘 사람은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슴을 쓰러 내린다. 광활한 공터가
되면서 찾아드는 상인들로 인해 천막을 치고 물건을 정리하고 시장을 찾
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니 또 다른 철암시장이 형성 되었다.
비스듬한 산 비탈길에 사람의 흔적이 생기고 살기위해 얼기설기 엮어 비
바람만 피하던 판자 집으로 시작하여 루핑집이 생겨나고 사람 사는 동네
로 변하면서 수많은 애환들을 쓸어내렸던 강원도 철암의 삼방동 마을, 석
탄 합리화 정책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폐광이 되면서 떠난 사람
들의 자리가 휑하니 쓸쓸하다 못해 외롭다. 수년간 마을의 흔적을 찾아
누비며 검은 탄광촌 사람들의 마음을 찍듯 기록하여 왔다.
탄광촌 사람들의 무거웠던 삶의 타래들을 흑백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그
리 쉽지만은 않았다. 사고 난 막장의 광부를 구급차에 태워 보낸 후 눈물
을 닦는 광부의 아픔과 울음, 그리고 살아있다는 안도감보다 불안감을 먼
저 떠올리는 사람들. 낡아지고 있는 삼방동, 남은 사람들의 허전함, 우물
속 넘치는 두레박의 물처럼 그들만의 희미한 추억들, 쌓인 눈을 치우다
내쉰 숨소리가 거칠게 뿜어져 나오지만 저탄장은 말없이 거대하기만 하다.
탄광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의 향수를 더해주고 잊었던 과거를 되새겨주며
풋풋한 기억을 선사해주기 위해 셔터를 눌렀었다. 폐광은 많은 변화를 가
져다주었다. 루핑지붕 아래 사람들을 타지로 나가게 함으로써 빈집을 만
들고 비탈진 곳에서의 위험한 철거작업은 탄광촌의 역사를 부수는 듯 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닌 시간만큼 삼방동의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삼방동 사람들의 실타래 같은 삶과 탄광촌 사람들의 검은 탄벽에서 흘린 눈물
의 이해와 탄광 1세대 산업 전사들의 고귀한 희생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북적였던 삼방동의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
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빈집이 늘어나면서
그 추억을 찾아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만큼 새로이 변해
갈 것이다. 새로운 변모아래 탄광촌 사람들의 검은 생활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유구할 것이다.
본 작업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기록물이다.

작가노트

두골산(頭骨山)의 검은 숨결
광부들의 삶의 터전인 강원산업과 삼방동의 젖줄인 두골산(頭骨山).
그 두골산(頭骨山) 8부 능선에 호식총(虎食塚)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능선을 따라 내려온 그 길 끝에 비스듬하게 옹기종기 자리 잡은 삼방동마을
60~70년대 막장에서의 황금를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어
하나의 우물에 공동화장실을 양보하며 살았다.

살기위한 목적 하나로 작은 공터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으면 집이 되었고
쌓인 눈에서 물이 떨어지면 지붕위에 누런 종이를 덧 씌워 골탄과 모래를 섞은 후
여러 번 바르고 나면 그것이 단단한 “루핑지붕”이 되었던 것이다.
연탄불에 된장 익어가는 냄새가 마을을 덥고 고드름이 길어지면 황금색
도시락을 든 광부들이 출근길을 나선다.
광부의 앞을 가로질러간다면 막장에서 사고가 난다는 속설 때문에 여자
는 미물의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햇살이 산기슭을 오르면 우물에서 광부의 땀 냄새와 검은 분진을 씻어내
며 세상얘기, 광부 가족들의 애환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가슴 답답한 속을 애꿎은 검은 옷에 화풀이 하듯 꾹꾹 밟으며 빨았으며
그로 인해 철암천에는 늘 검은 물이 흘렀다고 한다.
암모니아 가스가 스멀거리는 공동화장실에서 목울음 넘기다 못해 서러움
을 토했다고 한다.
석탄합리화 정책 이후 하나 둘 폐광이 늘어가면서 고향이라 여기며 살았
던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옥수수 낱알 빠지듯 빈집이 늘어나고
철거가 되면서 그 자리는 남은 사람들의 야채 밭으로 변해 갔다. 광부의
눈치를 보며 뒤돌아섰던 그 골목엔 벽화가 그려지고, 탄광촌의 흔적을 찾
으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실마리만 안겨줄 뿐이다.
강남처럼 번성했던 옛 시절은 지폐를 물고 있는 만복이의 형상으로 표현
되고 1세대의 검은 산업전사는 진폐라는 또 다른 고통으로 인생의 남은
시간을 인고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철암천 위에, 인위적으로 나무를
놓아 공간을 넓혀 생활한 것이 ‘까치발 건물’이다. 지금은 탄광촌 사람들
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존해 “철암 역사촌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많은 관
광객들이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며 안타까움과 고달픈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석탄 산업발전사와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는 산업유
산인 “철암 역두 선탄장”은 1935년에 준공된 등록 문화재 제 21호로 지정
된 시설물이다.
검은 분진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에 구슬땀을 닦아가면서 착암기의 진동
으로 인해 온몸이 바들바들 떨면서 캐내어진 석탄들은 지하 콘베어 벨트
를 타고 이곳 선탄장으로 집결된다.

광부가 막장 사고로 사망하면 그 부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곳 선탄부
에서 잡목과 폐석을 고르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계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폐석을 고르고 나면 검게 변한 모자와 하얀
마스크가 검은 마스크가 되고 눈썹위에 가라않은 분진을 털어 낼 시간도
없이 가족을 위해 시장을 간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서로 부딪히며 걸어 다녔던 시장은 철거라는 명분아
래 떠난 자리와 남은 자리가 분명해 졌고 그나마 남은 상가에는 인기척이그립다.

시간을 잃어버린 것처럼 낡은 철암시장은 정이 그리운 사람들의 어깨가
무겁기만 한데 나무판자 건물로 날려드는 눈바람은 매정하기까지 하다.
허름한 가게 안에서는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증기에 온기를 느끼는 사람
들의 한스런 수다가 이어지고 시장골목은 커피 향으로 채워졌다.
영원히 존재 할 것 만 같았던 철암시장은 뭉텅뭉텅 부셔지고 무너지면서,
삐죽한 철골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날리는 분진에 가던 길을 멈춘 사람
은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슴을 쓰러 내린다.
내리치는 것에 힘없는 상가들은 폐광 후 떠났던 그 사람들처럼 그렇게 먼
지 속에 하나 둘 사라져만 갔다.
광활한 공터가 되면서 찾아드는 상인들로 인해 천막을 치고 물건을 정리
하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니 또 다른 철암시장이 형성 되었다.
막장의 특성상 안전을 위한 기도로 찾는 피넷골 입구의 교회는 탄광촌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이다.팔순의 노모, 젊은 새댁, 누구나 할 것 없이 손이 부르트도록 빌고 또 빌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면 막장의 안전을 떠 올리며 고개 숙였을 것이다.
골목 가장자리로 돌아 올라가면 피넷골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막장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광부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그들을
덤덤히 지켜주는 ‘흥복사(興福社)’가 자리잡고 있으며. 탄광촌 사람들에
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비스듬한 산 비탈길에 사람의 흔적이 생기고 살기위해 얼기설기 엮어 비
바람만 피하던 판자 집으로 시작하여 루핑집이 생겨나고 사람 사는 동네
로 변하면서 수많은 애환들을 쓸어내렸던 삼방동 마을, 석탄 합리화 정책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폐광이 되면서 떠난 사람들의 자리가 휑하니 쓸쓸하다 못해 외롭다.
수년간 마을의 흔적을 찾아 누비며 검은 탄광촌 사람들의 마음을 찍듯 기록하여 왔다.
탄광촌 사람들의 무거웠던 삶의 타래들을 흑백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그
리 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사고 난 막장의 광부를 구급차에 태워 보낸 후
눈물을 닦는 광부의 아픔과 울음, 그리고 살아있다는 안도감보다 불안감
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낡아지고 있는 삼방동, 남은 사람들의 허전함, 우물 속 넘치는 두레박의
물처럼 그들만의 희미한 추억들, 쌓인 눈을 치우다 내쉰 숨소리가 거칠
게 뿜어져 나오지만 저탄장은 말없이 거대하기만 하다.
탄광촌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을 밤낮을 번갈아 다니며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기록하였다.
막장의 검은 탄벽을 기둥 삼아 살아가는 광부들의 진솔함을 담는 순간 자
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의 숨 막히는 막장은 현실을 거부 할 수
없는 역동 그 자체였었고,
탄광촌의 밤은 평온함과 무거웠던 삶의 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며,
골목까지 들리는 코고는 소리는 정겨움을 자아냈었다.
탄광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의 향수를 더해주고 잊었던 과거를 되새겨주며
풋풋한 기억을 선사해주기 위해 셔터를 눌렀었다.
폐광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루핑지붕아래 사람들을 타지로 나가
게 함으로써 빈집을 만들고 비탈진 곳에서의 위험한 철거작업은 탄광촌
의 역사를 부수는 듯 했다.

살아가기 위한 보수작업과 빛바랜 담장에는 벽화가 그려지고, 울음 삼키
며 탄광작업복을 빨았던 우물가에도 낯익은 벽화가 터를 잡았다.
카메라를 들고 다닌 시간만큼 삼방동의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진한 삶의 모습과 변화되어 가는 마을의 모습, 구진한 모습들을 그대로
보존된 역사촌 박물관과 까치발 건물, 검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철암 역두 선탄장의 위엄,가려진 시간 속에 역사가 된 것을,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
습들을 탄광촌의 면모를 보기위한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현 시점에삼방동 사람들의 실타래 같은 삶과
탄광촌 사람들의 검은 탄벽에서 흘린 눈물의 이해와 탄광 1세대 산업 전사들의
고귀한 희생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북적였던 삼방동의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빈집이 늘어나면서
그 추억을 찾아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만큼 새로이 변해갈 것이다
새로운 변모아래 탄광촌 사람들의 검은 생활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유구할 것이다.
본 작업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기록물이다.

* The exhibition place will be noticed shortly.